
신학철_한국현대사-초혼곡_캔버스에 유채_244×122cm_1994
신학철의 현장
▷ 1. 80년대와 호흡을 함께 한 민중화가는 많다. 그 가운데 아주 큰 이름으로 신학철이 있다. 그의 몇몇 작품은 당대의 민중운동의 공간 속에 가장 우뚝 높이 걸린 제단화에 비유될 수 있다. 그는 7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의 민주화 투쟁 시기에 이 땅의 민중적 사회변혁 운동과 호흡을 같이 하며 민중의 애환과 희망을 그리고 민중적 역사 전망의 숨결을 불어넣은 바리케이드 위의 공공미술가, 역사화가였고 농민화가, 노동운동 미술가였다. 신학철은 60년대 말 서구 전위미술의 적극적인 수용으로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모더니즘의 맥락에서 70년대 중반의 오브제 작업과 70년대 후반의 콜라주 작업을 통해 우리의 일상적 삶을 위협하는 대량소비 사회의 물신성을 충격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삶의 현실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 후 80년대 초반 신학철은 보다 구체적인 역사 현실로 다가가 우리의 근현대사를 특유의 해석과 탁월한 상상력으로 포착한 「한국근대사」 연작들을 발표하면서 화단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 연작은 일제 하 우리 민족의 수난으로부터 독립운동, 해방을 거쳐 동족산장의 전쟁과 분단, 전후의 굴절된 정치사와 사회사, 외래문화의 범람 등으로 이어지는 민중의 수난사를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형상화한 뛰어난 역작이자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된다.
▷ 이 후 그는 우리의 민족사를 단지 '수난'이라는 부정적 시각에서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오는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과 민족문화의 힘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아 미래의 통일된 세계 내지는 바람직한 민족공동체에 대한 염원과 그 묘사에로 발전해 나갔다. 이것은 80년대 민족미술의 흐름 속에서 그가 획득한 긍정적 전망이자, 이후 우리미술이 나갈 길을 예시해 주는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되었다.

왼쪽_신학철_가위_오브제_45.5×33.3cm_1974
오른쪽_신학철_부활-1_오브제_72.7cm_53cm_1979
▷ 90년대에 들어서 그의 작업은 농촌과 노동자 그리고 서민들의 삶 쪽으로 그 시선이 이동한다. 자연주의적 농민미술이나 노동운동 미술의 양상을 띈 이 시기의 작업은 그의 관심이 역사나 정치 그 자체로부터 그것의 배경을 이루는 민중 쪽으로 더 넓게는 서민의 삶으로 관심이 이동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그의 그림은 80년대 「한국근대사」연작의, 특히 정치사 중심의, 그 용트림하며 위로 감아 올라가던 수직적 구조로부터 강물의 흐름처럼 옆으로 흐르는 서민적 삶의 드라마로, 수평적 흐름의 구조로 바뀌는 시도를 보여준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발표한 대작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는 10여 년 간을 끌었던,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 이 대하 드라마 그리기의 중간 결산이었다 할 수 있다.

신학철_묵시-802_콜라주_60.6×80.3cm_1980
▷ 이 전시는 82년(서울미술관, 서울 구기동), 87년(온다라 미술관, 전주), 91년(학고재, 서울 인사동) 이후 네 번째가 되는 그의 개인전이다. 비교적 큰 규모의 회고전 겸 신작전이랄 수 있는데, 전시기획의 내용과 작가 세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전시기획자의 별도의 글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신학철의 작업과 그 현장을 그와 동시대인으로 살면서 보았고 느꼈던 사람의 입장에서 지금 어떻게 보고 느끼고 있는지를, 가급적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얘기해보고자 한다.
▶다음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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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경상북도 김천(金泉) 출생. 1968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모더니즘미술 동인모임 <AG> 그룹에서 활동하다 80년대를 전후로 역사와 현실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기 시작, 80∼83년 《한국 근대사》 연작에 이어 《중산층》 《농촌》 연작 등을 발표하였다. 현실비판적 주제를 원초적 인간 욕구로 압축, 표현한 점이 특징이며, 대표작에 《한국 근대사-종합(1983)》 《모내기(1990)》 등이 있다. 1982년 제 1 회 미술기자상을 받았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미술선생님 !!
은사님 이기도 한 신학철 작가에 대해 공부해보자.
신학철선생님은 오랫동안 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지냈다.
인자하시고 학생들과의 거리가 없으셨던 선생님이였고,
수업을 들었던 내가 가장 기억하는게 있다면 동물조각상 만들었는데 무척 큰손으로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을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칭찬이 미술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졸업하고 난 이후 얼마 안 있어서..구속된 일이 있었다.(2편에)
가장 암울했던 고등학교때
신학철선생님의 미술수업 시간은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수업이였고 시간이였다.
지금도 선생님은 가장 멋진 선생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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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지금의 상황..씁쓸하기 그지 없습니다.
역동적인 작품이 쭈욱..
저도 역동적인 작품 그리고 싶습니다.
그냥 찍어본 건가요? ^^
언제나 활짝 웃어볼 수 있을지..
벽을 쌓으려고만 해서 그런 걸까?
저역시 신학철 선생님의 영향을 받고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