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23 11:18

[문화]‘못난 발’이 흘린 가장 아름다운 눈물 ┃대한민국은행복한가

‘못난 발’이 흘린 가장 아름다운 눈물
[조선일보] 2007년 07월 23일(월) 오전 00:42 | 이메일| 프린트
22일 밤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강수진 발레 20년 감사모임’에서 주인공은 너무 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을 가진 그녀”라는 사회자(아나운서 이금희) 소개로 걸어나올 때부터 발레리나는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이날 입국한 강수진(40)은 “또 펑펑 울지 모르니까 미리 양해 구할게요”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곤 종이를 꺼냈다. 비행기 안에서 썼다는 감사 편지였다.

“…올해는 기쁜 일이 많았어요. 3월엔 ‘캄머탠처린(Kammertanzerin·궁중무용수)’을 인증받았고, 7월엔 발레단 동료들이 제 입단 20주년 헌정 무대를 만들어줬고…. 과분한 것들입니다. 또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지나간 세월과 여러 일들이 스쳐갑니다….(우느라 말을 잇지 못하자 박수가 나온다) 엄마, 아빠 그리고 소중한 분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발레만 생각하고, 사랑한 시간이었습니다. (길게 심호흡) 어디서 일하든 여러분들을 잊지 않겠…(다시 울음).”

말이 여러 번 끊겼지만 다 들리는 것 같았다. 강수진은 함께 입국한 남편 툰치 소크맨(터키인)에게 “Happy Birthday(생일 축하해)!”라고 말한 뒤 무대를 내려왔다.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1980년 어머니의 권유로 발레를 시작한 그는 1982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 입학했고 1985년 스위스 로잔 발레콩쿠르에서 우승(동양인 최초)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19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한 직후 발목을 다쳤다. 1년이 다 가도록 솔로는커녕 군무(群舞)에도 끼기 어려웠다. “극장 옥상에 올라갔다가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몸을 떤 적도 있었다”고 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연습을 택했다. 매일 15시간 이상 땀을 흘릴 땐 하루에 토슈즈를 네 켤레(보통 2주일치 소비량)나 써서 물품 담당자로부터 “아껴 써달라”는 주의(?)를 듣기도 했다. 옹이처럼 튀어나온 뼈, 뭉개진 발톱, 굳은 살과 상처들…. ‘세상에서 가장 못난 발(240㎜)’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녀의 발 사진에 감동하고, 삶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도 많았다.

1993년 1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모든 발레리나가 꿈꾸는 주역을 맡았다. 지난 7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그에게 헌정한 작품도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발레리나로는 환갑이라는 마흔 살이 됐지만 강수진은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을 정도로 체력은 문제없다. 발레단 동료들은 20주년 축하 파티에서 ‘앞으로 20년 더 해야지’ 하더라”며 웃었다.

이날 감사모임은 강수진의 오랜 후원자인 이세웅 서울사이버대학교 이사장이 마련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용배 전 예술의전당 사장, 박인자 국립발레단장 등 무용계 인사들이 150명 가량 참석했고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강수진은 오는 25~27일 LG아트센터에서 올해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으로 승급한 김지영,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의 유지연, 스위스 취리히발레단의 김세연, 국립발레단 김주원 등과 함께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을 한다. ‘강수진과 친구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무대에서 그는 드라마틱 발레 ‘오네긴’의 2인무를 출 예정이다.

어린 시절 스튜어디스가 꿈이었다는 발레리나. 막이 오를 시간, 그는 커튼 뒤에서 토슈즈 신은 발로 콩콩콩 무대를 세 번 두드리는 버릇이 있다. 다음 20년은 어떻게 살 것 같으냐고 물었다. 강수진은 “나는 멀리 보지 못 한다”며 “오늘과 같을 것”이라고 했다.




발레리나 강수진씨가 독일에서 귀국, 2007년 7월 22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에서 발레인생 20년 감사모임을 열었다. 강수진씨가 감사인사를 전하던 도중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터뜨리고 있다. /김보배 객원기자 iperr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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